좀처럼 구제역이 끝이 나지 않고 있다. 신종 구제역이 발생하고, 이제는 돼지가 아닌 개에게까지 구제역이 번지고 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 먼저 하자면 필자는 이등병으로 자대배치를 받았던 첫날, 부대 인근에 구제역이 발생해 대민지원을 나갔던 경험이 있다. 포크레인이 거대한 구덩이를 파놓은 곳에, 하다못해 비닐 한 장도 깔지 않고 돼지들을 산채로 땅에다 묻었다. 그 끔찍했던 돼지들의 비명소리와 냄새는 여전히 기억에서 잊히지 않는다.

작업은 여러 가지로 끔찍했다. 영하의 날씨에 손으로 잡아당기면 그냥 찢어지는 사실상 종잇장이나 다름없는 방역복을 입고 작업에 나서야했다. 점심이라고는 작은 컵라면 하나에 맛대가리 없는 총각무 몇 조각을 종이컵에 담아 준 것이 전부였는데, 최소한 식당 하나 지원받지 못해 노숙자처럼 길가에 걸터앉아 얼어붙은 손으로 젓가락질을 하며 힘겹게 먹었다. 구제역이 이렇듯 기승을 부리고 있는 상황에서, 대민지원으로 고생을 하고 있을 이 나라의 군인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해마다 벌어지고 있는 이 도살의 현장은 왜 멈추지 않는가. AI(조류인플루엔자)는 백신이 없으니 그렇다고 해도, 구제역은 백신이 있는데도 상황이 이렇다. 여기엔 근본적인 문제들이 겹쳐있다.

지난 14일 농림축산식품부가 밝힌 지자체 구제역 백신 접종률은 100%를 넘는다. 심지어 충북은 접종률이 177%다. 돼지나 소에 백신을 한 차례 이상 접종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충북은 작년 12월부터 최근까지 구제역이 37건이나 발생했다. 전국 시·도 중 최다에 해당한다. 

왜 이런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할까.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지자체들이 축산농가의 구제역 백신접종률을 날림으로 보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접종률 100% 이상으로 보고된 발병농장을 막상 검사해보면 항체형성률이 0%인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날림 보고’에는 필연적으로 ‘날림 조사’가 있기 마련인데, 접종 사실을 확인해야할 지자체 담당자들이 전화로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과태료 부과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다. 구제역 백신 미접종으로 농가에 부가된 과태료 건수는 작년 1년을 기준으로 16건이 전부였다. 올해 세종시는 과태료 부과건수가 3건에 불과했다.

접종을 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리겠다고 아무리 엄포를 한다 해도 제대로 된 단속이 이뤄지지 못하다보니 과태료를 물릴 재간이 없는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상황에서 정상적인 접종이 이루어질 리가 없다. 돼지를 한 마리씩 고정시켜놓은 상태에서 목에 접종을 하는 것이 규정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근래 모 언론에서 취재한 뉴스 영상에서는 수의사가 주사바늘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돼지들에게 쩔쩔매다가 한 번 주사를 맞힌 돼지에게 다시 주사를 맞히는 등 제대로 된 접종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바 있다. 환경부는 수의사가 접종에 이렇게 애를 먹는 마당에 농가 주민들에게 자가 접종을 맡기고 있다. 

근래 환경부 앞마당인 세종시 인근까지 구제역이 번진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저 운이 나빠서라든지, 구제역이 에볼라보다 특별히 지독한 병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구제역 청정구역이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백신접종을 허용했다면, 적어도 구제역 퇴치에 관해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둬야하는 것이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지위와 질병 퇴치 둘 다 잃어버리는 게 아닌가하는 우려감만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새로운 백신 투입으로 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지 말고 백신이 실제로 어떻게 접종되는지, 실제로 제대로 된 접종이 이뤄졌는지 좀 더 밀착해서 관리해야만 한다. 늘 그랬듯 우리들의 문제는 질병이 아니라, 그 질병을 관리하는 사람과 조직체계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