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다를 바 없는, 반성 없는 신년이 또 시작했다는 걸 알리려는 것일까. 의정부 아파트 화재에 이어 파주 LG디스플레이 공장에서 질소 가스에 노출된 작업자 2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복잡한 도심과 복잡한 설비가 들어찬 큰 공장에서 안전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안전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미리 점검을 하고, 실제 사고가 일어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훈련을 통해 절차를 숙지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안전사고를 막기 위한 규제를 이렇다 할 다른 대책도 없이 풀어준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까? 사고방지를 위한 점검과 훈련을 통한 절차 숙지가 그저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화재가 난 의정부시 아파트에는 주차장에 스프링클러가 없었다. 10층 이하 건물은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화재가 난 대봉그린아파트는 다른 건물들과 불과 1미터 정도의 간격을 두고 서있었다. 이는 이명박 정부 시절 도시형 생활주택 규제를 대폭 완화한데 따른 것이었다.

도시형 생활주택은 아파트와 달리 각종 안전 및 편의 시설 설치 의무가 대폭 줄었고, 상업지역으로 적용을 받아 일조권 적용에서도 배제돼 건물간격이 최소 50cm만 넘으면 문제가 없다. 법은 그렇게 정하고 있다. 인접건물의 화재를 막는 드렌처(Drencher)같은 장비가 있지만 ‘안전 없는 대책’으로 규제 풀기에만 급급했던 결과 이러한 안전 장비 도입은 도외시 됐다.

문제는 끝이 없다. 해당 아파트는 스티로폼에 시멘트를 덧칠한 ‘드라이비트’ 단열재로 마감돼 더욱 쉽게 불이 붙게 만들어진 구조였다. 이런 마감재를 도시형 생활주택에 사용해도 되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논의를 한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소방도로 진입은 주택가 주변의 불법 주차에 가로막혀 초기진화에 실패했다. 이러한 도시형 생활주택은 준공실적을 기준으로 2011년 1만 9천 여 가구에 달한다. 

LG 디스플레이쪽 사건 역시 의정부 아파트 화재와 비슷했다.

이번에 발생한 사고는 지난해 12월 말 파주 사업장에서 안전비상훈련을 한 지 불과 13일 만에 발생한 것이다. 게다가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12월 12일 한국안전인증원이 주관한 안전경영시스템 평가에서 공간안전 인증을 받았다.

이번 사고는 비상훈련을 연간 100여 차례 실시하고, 안전체험관을 사업장 내 설치, 안전교육 실시 등을 하며 '안전경영'을 강조해 왔다는 사실을 한 순간에 무위로 돌려버리는 사고였다. 조사결과가 공개되어야 과연 ‘질소 누출’ 사고였는지, ‘질소 노출’ 사고인지 알 수 있겠지만, 형태가 어떤 것이냐의 문제를 따지기 전에 안전 불감증과 관리 허술이라는 책임은 면키 어려울 것이다. 일각에서는 말로만 안전경영을 외쳤다는 비난도 이어지고 있다.

형식적이고 엉터리 같은 규제를 풀어주는 것은 좋다. 하지만 최소한의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안전 없는 대책’은 오래 된 속담처럼 ‘섶을 지고 불속에 뛰어드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운이 좋다면 섶을 지고도 불이 붙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한 번이라도 붙었다면 그 결과는 끔찍한 모습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또한, 정부는 기업의 규제를 풀어줄 생각만 하지 말고 지켜야만 하는 안전에 대해서는 철저히 점검해야만 한다. LG디스플레이 질소 누출 사고를 보고 있으면 지난해 불소 누출 사고가 올해 또 다시 되풀이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흔히 공사장 작업현장에서 볼 수 있는 ‘OOO 공사현장 무재해 100일’처럼 ‘대한민국 무재해 10일’을 보고 싶다는 희망을 품어보는 것은 글쓴이 개인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