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내 안전설비 인 환풍시설 및 대피시설 미흡>

최근 호남고속도로의 호남터널 하행선에서 발생한 사고는 우리나라 각종 도로의 터널들이 대형 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날 사고로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 했으며 차량들이 불에 타면서 터널 내부에 심한 연기와 유독가스가 가득 차 운전자와 승객 등 200여명이 어둠속의 터널에서 탈출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2001년 12월 한국도로공사가 한국기계연구원에 요청하여 시행한 터널 내 화재실험 결과에 따르면 화재가 발생할 경우 유독가스에 노출된 사람이 의식불명에 이르기 직전까지의 시간이 4분 이내로 나타났고, 사람의 피난 속도 0.85㎧「“고속도로터널방재시스템연구(2002년 한국기계연구원)” 용역결과에서 제시한 피난 속도 0.8㎧~0.9㎧의 평균치」를 고려하여 거리로 환산할 경우 204m(피난 속도 0.85㎧×4분×60초)로서 거리 이내에 대피장소가 있어야 사람이 화재장소로부터 안전하게 피난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미국(NFPA 502)의 경우 300m 이상인 터널에 대하여 200m마다, 노르웨이(DESIG GUIDE)의 경우 터널 길이에 상관없이 250m마다 대인용의 피난연결통로를 설치하도록 규정(또는 권고)하고 있는 등 다른 나라에서는 사람의 안전 대피에 필요한 거리(이하 “안전거리”라 한다)를 감안하여 피난연결통로의 설치기준을 마련하고 그에 따라 피난연결통로를 설치하고 있다.
그러므로 터널에서 화재 등 재난발생에 대비하기 위하여 피난연결통로의 설치기준을 마련할 때에는 화재장소로부터 사람이 인접 터널로 안전하게 피난할 수 있도록 안전거리보다 가까운 간격으로 피난연결통로를 설치하도록 하여야 하고, 인접 터널이 없는 때에는 피난연결통로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별도의 피난처(Shelter)를 설치(양방향 통행방식인 길이 11.6km의 몽블랑 터널과 길이 16.3km의 고타르 터널의 경우 각각 300m 및 250m 간격으로 피난처를 설치·운영 중)하도록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도 건설교통부에서는 도로의 구조·시설기준에 관한 규칙을 제정하면서 터널 내에서 화재 등 재난이 발생할 경우 사람이 질직사하지 않고 인접 터널로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안전거리 등을 감안하지 않은 채 길이가 1,000m 이상인 터널에 750m 간격으로 피난연결통로를 설치하도록 규정하였고, 인접 터널이 없어 피난연결통로를 설치할 수 없는 터널에 대하여도 별도의 피난처를 설치하도록 하는 등의 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
그리고 2003. 7. 16. 서울지방국토관리청 등 6개 기관에서 공용 또는 건설 중인 총 438개소의 터널에 대하여 피난연결통로 등의 설치 실태를 조사한 결과 길이가 2,925m인 수인터널(양방향통행방식) 등 353개소(1,000m 이상: 10개소, 1,000m미난: 343개소)의 터널의 경우 피난연결통로 또는 피난처를 아예 설치하지 않았고 피난연결통로를 설치한 나머지 85개소(1,000m 이상:68개소, 1,000m 미만:17개소)의 터널의 경우에도 안전거리 204m보다 길게 237m부터 750m의 간격으로 설치(26개소)하거나 설치예정(59개소)으로 있다.
그 결과 위 규칙에 따라 건설하여 공용 중이거나 건설 중인 터널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사람이 화재장소로부터 안전하게 대피하기 전에 질식할 가능성이 높은 실정이다.
도로공사의 한 관계자는 감사원의 지적을 받았지만 방재시설 확충보다는 “1년에 한번씩 소방훈련을 하고 있다”고 밝혀 그것이 대응의 전부라고 답변했다. 아울러 환기설비의 경우 터널안 매연을 줄이고 공기질을 높이기 위한 장비로 사용되고 있고 극히 일부분 방재시설로 작동한다는 논리로 설명했다. 건설교통부와 마찬가지로 도로공사 역시 방재시설의 경우 터널의 길이만 고려할 뿐 인명피해의 우려가 있는 교통량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터널 내 사고 시 알아서 대피?
차량 화재사고가 발생한 호남터널에는 유사시를 대비한 환풍시설이나 대피시설이 전무했다. 안전시설의 미비로 인해 불이나자 10분도 안되 터널 내부가 연기와 유독가스로 찼으며 운전자와 승객들은 피난갱이 없어 수백m를 뛰어서 터널 바깥으로 빠져 나와야 했다. 조명등이나 유도등도 불이 나자 꺼져버려 무용지물이 됐다고 한다. 유사시 대피로를 이끌어 주는 유도등 마저 나갔으니 운전자들이나 승객들은 어둠속에서 생명을 건지기 위해 공포의 질주를 했던 셈이다. 호남터널에는 50m 간격으로 소화기가 비치돼 있었다고 하나 불이 꺼진 상태니 소화기를 찾기란 불가능 했을 것이다. 이런 원시적 설비로는 사고가 나지 않기만을 바라는, 요행수를 기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현행 관련법규에는 길이 1000m 이상의 터널에만 연기제거 시설인 제트팬과 피난갱을 설치토록 규정돼 있다 한다. 호남터널의 경우 길이가 760m 이니 환풍시설과 대피시설이 없는것은 당연하다. 스프링클러의 설치는 규정자체가 마련돼 있지 않다. 길이가 1000m 이하인 터널 내에서는 대형사고가 날 경우 승객이나 운전자들이 스스로 알아서 대피하고, 또 화재도 진압하라는 말일 것이다. 참으로 한심하고 무책임한 규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도로망의 확장으로 터널은 길고 짧은 것을 합해 수 백 개에 달한다. 그리고 차량 통행량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런 정도의 안전시설과 규정대로라면 터널내의 작은 사고가 대형사고로 이어지고, 많은 인명피해를 낼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