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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하생들과 함께 강릉 오죽헌을 찾은 한국문화답사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
타의 추종을 불허하리만치 독보적인 시서화의 삼절을 찬미하며 묵향의 진수를 익히고 배운다.
명필의 경지를 숙원으로 삼아온 해동서예학회의 김종태 이사장은 우리 서예의 대중화와 국제화를 위해 열정적인 삶을 불사르며 심오한 붓을 가까이 했다.
書의 藝가 경지에 오르면 스스로 새로운 필법의 서체를 탄생시키게 된다는 선인들의 작화법을 그는 숭상하며 필력을 더한다.
종이, 붓, 먹, 벼루의 문방사우를 평생동안 벗삼아 고매한 인품을 견지해 온 김종태 이사장.
경북 경산시 진량읍 선화리에서 태어난 그는 유년시절부터 서예를 겸수한 선친의 후학아래 붓을 들기시작하면서 오늘에 이른다.
가풍에 따른 조상 섬기는 서화에 남다른 교육을 받으며 김 이사장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이미 성인조차 버거운 지방을 쓰고 축문을 짓고 독축했다.
1973년 (주)부산조선공업에 입사해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그는 과중한 업무에 피로가 누적돼 그만 병원에 입원하면서 일대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당시 침대에 누워 미래를 가늠하던 전도유망한 청년은 만약 회사원으로서 생을 마감한다면 이름을 명예롭게 남길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틈틈히 이어온 서예를 연마해 먼훗날 한국 서예사에 한 획을 남길 당대 최고의 명필이 되겠다고 결심을 했지요."
그때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서예학원을 찾아 역량을 쌓은 그는 회사를 전격 사직하고, 1984년 서예학원을 운영하기 시작하며 본격적인 후학 양성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서예의 기본인 서법을 위주로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각종 대회에서 수상의 영예를 얻게 되었고, 그와 더불어 학원과 그의 명성 역시 시나브로 높아지게 됐다.
그러한 지도력과 경영 마인드를 인정받아 1990년 학원총연합회 서예분과위원장을 역임하게 된 김 이사장은 당시 적자단계에서 해체될 위기에 처했던 서예분과를 3년간의 피땀어린 각고로 흑자를 일궈내는 수훈을 남겼다.
각종 서예대회의 심사위원 등으로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며 서예계에서 업적을 쌓아온 김 이사장은 가장 영예로운 하나로 올들어 제11회째로 접어든 '대한민국 해동서예문인화대전' 창립을 손꼽는다.
관련 대회를 주최한 해동서예학회는 미국에서 개최되는 동아서법국제회의에 대한민국 대표단으로 참석해 논문 발표와 작품 전시, 서예시범을 통한 한국 서예의 현황을 발표함으로써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지난 98년 메릴랜드대학과 2000년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주관한 행사를 통해 해동서예학회는 한국 서예의 발전과 변천 과정을 발표해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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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태해동서예학회 이사장> |
김종태<사진> 이사장은 기존 공모전과 달리 모두에게 공정하고 진솔한 심사를 통해 서예인의 품위와 위상을 바로 세울 수 있도록 할 것이란 비전을 제시한다.
실제로 해동서예학회는 지난 2006년 전통문화부문 최우수 학회로 '신경영 대상'을 수상하는 저력을 보이기도 했다.
김 이사장은 회원들과 함께 '무료 가훈 써주기 행사'를 주관해 수천 가정에 서예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며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김 이사장은 전통문화인 서예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구태의연에서 벗어나 새로운 창조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서법의 연구와 지도방법의 개선, 공모전의 운영방법 등 개선해야 할 난제가 산더미같이 많다는 것이다.
"서예는 각 동마다 자치센터에서 가르치고 있어 보급은 많이 된 상태입니다. 반면에 서예가들은 직업을 잃었고 학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그만 서예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려를 금치못한 김 이사장은 1995년 서예인의 친목과 건강을 도모하기 위해 한국서예인산악회를 창립하고 10여년 넘게 회장직을 수행한데다 현재는 명예회장으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하면 된다!'라는 올곧은 초지일관과 '온고지신'이란 성어를 배워 내 것으로 소화하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신념아래 부지런히 배우다 보니 37년의 서예 공부가 지금에 이르렀다."
해동서예학회 김종태 이사장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이렇게 회고한다.
서예인산악회 결성을 주도한 김 이사장은 316곳의 산을 찾아다니면서 조선일보사에서 발행하는 월간 잡지 '산'에 3년 남짓 그림 산행코너를 기고하기도 했다.
'나를 버리면 누구든 참좋은 당신'이라 애칭하는 그는 매번 산에 오를 때마다 산 이름으로 삼행시 2편씩 630여편의 시를 지어 자유시로 발표한 바 있다.
1995년 시인으로 등단해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인 김 이사장은 '물소리 새소리', '물구나무서는 산' 2권의 시집과 '많은 것을 갖기보다는'이라는 에세이집을 출간하며 중견 문인의 위상을 다져왔다.
수백명의 작가가 응모하는 대한민국 해동서예 문인화 대전을 개최한 그는 대형 서화대전을 진행하며 수많은 초대작가를 배출했다.
재작년 6월에는 한국문화협회를 창립해 협회회원 62명과 함께 강릉 오죽헌으로 답사를 다녀왔다.<사진>
김종태 이사장은 "서예는 마음의 평정을 가져온다"면서 "첫째, 건강을 저축하라. 둘째, 지식을 저축하라. 셋째, 돈을 저축하라"고 주저없이 훈육한다. 그리고 "성공을 위한 이 세 가지 비결을 잘 지키면 반드시 성공에 이를 수 있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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