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에서 한 마리 동물이 잡아 먹히는 것은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먹고 먹히는 것이 크게 보면 자연계의 질서를 유지해 가는 먹이사슬의 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생동물을 잡아 보신(補身) 식품으로 먹는 것은 생태계에서 인위적으로 한 종을 완전히 사라지게도 하므로 문제가 심각하다.
예전에도 동·식물이 멸종하는 사례는 많았다. 공룡이 그랬고 맘모스가 그랬다. 문제는 문명이 발달하면서 멸종 속도가 이전보다 가속화되는데 있다. 이 순간에도 동·식물을 합쳐 해마다 2만 7천여 종이 사라진다. 자연적인 멸종 속도보다 수천 배 빠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좀 더 심각하다. 작년 환경부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야생동물은 5백 64종으로 이 중 멸종 위기에 있는 동물이 37종, 보호가 필요한 동물이 1백 종인 것으로 나타났다. 야생동물의 4분의 1이 사라질 위기에 있거나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야생동물의 위기에는 경제 성장이 최선의 목표로 설정된 이후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탓도 있다. 백두대간에는 사방으로 길이 뚫리고 나무가 잘려 나갔다. 들판에도 많은 양의 농약이 살포됐다. 웬만큼 큰 하천에는 댐이 건설됐으며, 도시 하수나 공장 폐수가 하천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만큼 야생동물에게는 살기 어려운 세상이 된 것이다.
야생동물의 수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밀렵 때문이다. 박제나 장신구로 인기가 있어 밀렵은 전 세계적으로 문제지만 우리나라는 보신식품이라는 이유로 무차별 자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80~90%가 '정력'과 '건강'이나 '약용'이로 쓰기 위해 밀렵된다.
보기 드문 야생동물일수록 더 효험이 있다는 속설은 더 무섭다. 야생동물의 멸종 속도를 앞당기는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희귀한 야생동물이 암시장에서 비싸게 거래될 수밖에 없고 밀렵꾼도 줄지 않는다. 깊은 산 속에 사는 3백그램 정도의 까치살무사는 20만 원을 호가한다. 같은 뱀이라도 백사(白蛇)처럼 특이하면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비싸다. 천연기념물은 '위험수당'이 붙어 더 비싸다. 반달곰은 3억 원, 사향노루는 3천만 원에 팔릴 정도다. 돈 버는 데는 체면도 없다.
이를 위해 전문 밀렵꾼이 각종 올무와 덫, 총기와 함정 등 여러 방법으로 동물을 잡는다. 심지어는 독극물이나 농약을 사용한다. 1999년에는 환경 단체인 녹색연합이 단 이틀 동안 에 강릉의 석병산 일대에서만 무려 3백여 개의 올무를 찾아내 없앴다. 이 과정에서 목만 남은 너구리와 올무에 걸려 죽은지 1년이 지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동물의 사체도 발견됐다.
이렇게 잡은 야생동물은 도시의 건강원이나 약재상, 외곽의 요리집에 불법적이고 은밀한 방법으로 팔려 나간다. 이런 곳에 가면 뱀·개구리 같은 야생동물 약재와 요리뿐만이 아니다. 오소리·고라니·산양·수달과 같이 자연에서 조초 보기 힘든 귀중한 동물도 선금을 주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한국동물구조협회에 따르면 전국 1만 7천 개에 달하는 건강원의 90% 가량이 직·간접적으로 야생동물 불법 거래에 관여하고 있으며, 전국의 밀렵꾼 수는 2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건강원을 중심으로 한 야생동물 밀거래 규모는 1천 5백억 원대, 건강원을 거치지 않는 판매와 불법 박제 시장까지 합치면 그 규모는 더욱 커진다.
부끄럽지만 우리나라의 보신 문화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개고기 뿐만은 아니다. 몸매만 좋다면 육해공을 가리지 않는다. 구렁이·자라·지내 등은 오래 된 메뉴다. 멧돼지·너구리·족제비·오소리·고라니·산양·수달·노루와 같은 산짐승은 물론 가창오리·청둥오리·까마귀와 같은 조류, 심지어는 거머리·굼벵이·도마뱀·두꺼비·두더지·땅강아지·불개미·지렁이도 찾는다.
지금도 밀수입된 뱀으로 만든 생사탕이 팔린다. 호랑이 뼈·코뿔소 뿔·웅담·사향 등이 약재상에게 비밀리에 거래되고 있음은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우리의 잘못된 '보신문화'가 국제적인 비난거리 정도로 그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최소한 세계 경제 자원의 40%, 특히 빈곤층이 필요로 하는 물품의 80%가 생물자원에서 유래한다. 더욱이 생물 종이 다양해서 의학·경제 발전이나 기후 변화 같은 새로운 문제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다.
작년 말부터는 우리나라에서도 야생동물을 불법으로 잡거나 취급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이를 사서 먹는 사람도 ‘조수 보호 및 수렵에 관한 법률’이 적용돼 처벌 받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름까지 공개한다고 한다.
이제 법률에 의해 야생동물은 어느 정도 보호를 받는다. 그러나 처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야생동물로 보신하겠다는 의식을 바로 잡아야 한다. 아울러 개발에 따른 야생동물 감소에도 신경 써야 한다. 야생동물이 살 수 없는 곳에는 사람도 살 수 없다는 자연의 이치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자연보전협회 류재근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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