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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
문인화를 통해 오늘을 만나다. 김헌수. 오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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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도 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기억해야 할 것들이 있다. 제 아무리 현대사회라고 하지만 여전히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기에 그 간에는 지켜지고 흘러줘야 할 덕목들이 있다. 문인화가 지금도 사랑받는 이유도 이와 같으리라. 그림을 통해 자신의 의중을 드러냄을 여흥으로 누리던 선비와 사대부들의 그림 문인화, 그 속에는 들어있는 선조들의 지혜과 흥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살아있는 정신이 되기 때문이다. 서양화폭이 이젠 친숙하고 다양한 디자인이 또 하나의 유행이 되는 지금, 아연 정숙모 화백이 그려내는 문인화에 시선이 돌려지는 것도, 문인화와 시대 정신에 대한 화백의 고민을 함께 느껴보고자 함도 선조들의 인품이 우리에게도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하는 3월 2일, 아연 정숙모 화백을 그녀의 화실에서 만났다.
Q. 입문을 하시게 된 계기는?
A.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또 그림을 그리면 언제나 선생님의 칭찬을 받았고, 그 칭찬은 어린 마음에 큰 용기가 되었습니다. 그 후 학창시절은 공부와 미술반 활동을 병행하였지만 대학 진학은 시간이 흐른 뒤에 이루어져 화가로의 꿈은 공백기가 있었던 셈이지요.
더군다나 '문인화'라는 장르는 당시 私塾을 통해 이루어지던 시기였고, 또 저 또한 문인화가가 되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도 않았죠. 그러던 중 결혼을 하여 첫 아이를 낳고 주변을 보니, 현실 속에 갇힌 느낌이더라구요. 제 10년 뒤 모습을 상상하니, '이건 아니다' 싶더군요.
마침 같은 교회에 다니던 지인이 서양화를 전공하여 미술활동을 하고 계셨는데, 그것이 제게는 작은 자극이 된 셈입니다. 아이는 어리고, 시간과 경제적 여유는 많지 않아 고민을 하던 터에, 가까운 곳에 수묵화와 서예를 가르치는 곳을 알게 되어, 첫 발을 담그게 된 것이 오늘날 문인화가라는 수식어를 제 이름 앞에 놓게 된 것이지요.
그 때 만난 서예 선생님은 지금은 서단과는 거리를 두고 계시지만 제게는 너무 고마운 분입니다. 사실 서양화에만 관심이 있던 제가 문인화라는 장르에 빠져 평생을 함께 할 줄을 당시 정말 생각도 못했던 일입니다.
그런데 먹을 만난 순간, 이건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먹빛의 오묘함이 나를 사로잡았고, 살아 움직이는 선질은 화려한 색 속에서는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매력으로 느껴졌지요. 그리고 뒤돌아보지 않고 지금까지 달려 왔습니다. 그러던 중, 이론에 대한 갈증으로 동양미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아직도 부족함이 많아 공부하고 있는 중입니다.
@. 과거와 달리 국전에 대한 의미가 달라진 것 같은데요.
A. 장, 단점이 있다고 봅니다. 아무래도 국전에 대한 권위가 전과 같지 않죠, 국전의 역사를 먼저 보자면, 1945년에 국전이 처음 시작됐지만, 한국전쟁으로 인해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은 1952년입니다. 그 후부터 1981년까지 국가가 주도해 이뤄지는 전람회였던만큼 아마추어 작가들이 등용할 수 있는 큰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미술협회, 한국서예협회, 한국서가협회 등 국전에 따른 기관이 나눠지면서 권위가 약화됐죠. 지금은 민전이 100여개가 넘습니다. 하지만 다른 측면으로 보면 장점도 찾을 수 있어요. 다양성이 바로 그렇죠. 최근 캘리크래피가 각광받는 것 또한 그렇습니다. 캘리그래피의 경우 기존 컴퓨터 활자체가 가지고 있던 실용성에서 사람의 향을 그리워하는 대중들의 원함이 담겨 있기 때문인데요, 손글씨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죠.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디자인과 서예가 연계될 수 있다는 가능성, 순수예술과 실용예술이 함께 이뤄가는 가능성이라 생각해요.
Q. 문인화와 시대정신 결부는 참 어려운 문제인 듯 한데요.
A. 그렇습니다. ‘ 이 시대의 문인이 있는가?’란 질문은 그래서 제게 항상 중요합니다. 너무 서양화에만 치우친 지금의 세대에게 문인화를 통해 시대정신을 담아보고자 함도 어렵구요. 그렇지만 현대인들의 감성을 울리는 문인화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선조들이 문인화를 통해 드러내던 본질과 인품 역시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하기 때문이죠. 다만 현대에 맞추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19세기말~20세기 초 중국의 근대화가로서 매우 유명한 반천수 선생처럼 말이죠. 당시 중국 내부의 전통을 시대에 맞게 표현하기 위해 시대와 맞물리며 지켜내던 전통을 전 크게 공감합니다. 서양화를 재현인데 비해 동양화를 체현이라 말함도 여기에 있습니다. 동양화는 재해석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죠. 그대로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화가를 통해 다시 해석되어 표현되는 것, 문인화에 담긴 작가의 의, 정신이 높은 점도 이 때문입니다.
Q. 이 시대에 문인화가 갖는 의의는 무엇일까요?
A. 문인화는 정신과 사상을 함께 그려내는 동양의 독특한 예술입니다. 단순한 표현이 아닌, 작가의 내면의 세계까지 붓을 통해 드러내는 것이기에 정신예술이라 하지요. 따라서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달하면 할수록 더욱 그 가치는 높다고 생각합니다.
대나무를 통해 선비의 모습을 보고, 매화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담는 은유와 比德 사상의 표현은 서양화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문인화만의 독특한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잘 인지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교육에 활용한다면 인성교육 차원에서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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