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선종한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집무실에 놓인 도자기에 적힌 친필 문구다. 문구처럼 그는 한 평생 한국사회와 세상 영혼들을 끊임없이 먹이고 채우는 스승이었다. 자신의 죽음을 통해 빛을 잃었던 두 사람 눈에 생명을 회복시켰다. 끊임없이 늘어진 긴 조문객들의 긴 행렬도 그렇다. 추위와 슬픔과 애잔함으로 가득한 행렬 속에서 사람들은 김 추기경이 삶으로 보인 선한 영향력을 다시 되새기고 되새겼을 것이다. 우스갯소리지만 그 덕이 얼마나 넓었더니 명동성당 주변의 편의점은 때 아닌 호강을 누렸다고 한다. 조문객들이 이용해준 덕분에 전에 비해 상당수의 매출 실적을 올렸다니 과연 영향력이 실감된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삶과 말들이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마음과 말과 행동이 하나가 됐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령. 서로 밥이 되어 주십시오라는 친필처럼, 그는 먼저 누군가의 영혼의 양식이 되어주고, 또 육체의 양식도 제공했다. 청빈을 주장하긴 쉽지만 그렇게 살기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누군가에게 그의 낡은 신발과 정갈한 방안 풍경은 더 많은 것을 말해 줄 것이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현직 대통령부터 유명 정치인, 수많은 오늘날의 리더들과 예술인들이 전하는 일화에서도 드러난다. 김 추기경은 그들이 가장 힘든 순간, 가난한 마음과 삶을 채워줬기 때문이다. 그를 통로로 성장한 이들이 그렇게 많았기에 훗날 자신이 베푼 것에 대해 받고 누리기에도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받은 것을 다 다시 사회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정작 자신은 세상에 나온 모습 그대로 생을 마감했다.
밥이 되어라는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자. 밥이 되어주기 위해서는 '서로'가 전제가 되어야 한다. 즉, 너도 나에게 밥이 되어주고, 나도 너에게 밥이 되어 주겠다는 상호 관계가 그것이다. 요즘처럼, 내 배 채우기도 바쁜 세상에 누군가에게 밥이 되어준다는 게 만만치는 않다. 그 사이에는 불신도 나름 근거로 자리잡고 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너한테 밥이 되어줬는데, 너가 나에게 밥이 안되면, 그 사람은 살 찌고, 난 굶어죽는게 아닌가, 그러니 조건을 달자, 너가 먼저 나한테 주면, 그때 내가 너한테 주겠다는 심보를 무시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밥이 되어준 사람들을 기억해야 할 때다. 내가 먼저 주지도 않았는데, 나를 채워주는 누군가가 사회에는 있다. 심지어 그분들은은 우리에게 다시 받아갈 것도 바라지 않는다. 다만 줬다는 걸로도 감사하고 다시 감사하는 이들이다. 얼마 전 부산 초등생 3명 목숨 구한 고(故) 최한규군에 명예 졸업장이 수여됐다. 3명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삶을 투자한 그에게 명예 졸업장도 너무 작다 싶다. 또 가수 이문세씨가 인기있는 노래의 저작권을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이에 이 노래의 발생 수익금은 그의 사후 50년까지 모금회가 갖는다. 기부한 노래인 '이 겨울이 지나간다'는 MBC FM4U '오늘 아침 이문세입니다'를 진행하며 청취자 3000여 명과 함께 만든 곡이라 그 의미가 더 깊다.
녹색성장도 이와 같다. 성장을 하려면 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녹색성장은 과연 누구를 살찌우는 것인가, 이 질문을 성장 과정 내내 고민하고 토론하며 나눠야 한다. 끊임없이 인간의 밥이 되어 온 것이 바로 자연이다. 이미 우리가 충분히 먹었다면, 먼저 밥을 주지는 못할망정, 받은 빚이라도 갚아야 하지 않겠나 싶다. 녹색성장으로 사회가 발전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도 이제는 그동안 받아온 밥을 자연에게 줘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무조건 환경 측으로 기울자는 뜻은 아니다. 다만, 먼저 먹고 누린 자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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