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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저녁 경남 창녕 화왕산에서 진행된 억새 태우기 행사 결과는 참혹했다. 이 행사를 보러 왔던 관광객 중 사상자가 70여명이나 나왔다. 이 행사를 두고 내려지는 평가가 많다. 바로 인재, 혹은 관재란 평이다. 1만5000여명이 몰린 행사에 안전요원은 100여명에 불과했다는 점도 그렇겠지만 부족했던 방화선 설정도 근거다. 게다가 군청 직원이 참고했다는 기상청의 빗나간 예보도 한 몫 했다. 휘영청 밝게 뜬 달 아래 화왕산의 화재는 억새풀을 태우다 못해 사람을 해치고 이를 듣는 우리 모두의 마음까지 불씨가 날아들어 온 셈이다.
정월대보름 풍습인 쥐불놀이는 처음부터 관광이 목적이 아니였다. 봄을 준비하기 전 꽁꽁 언 논과 밭에 불을 지펴서 해충 및 해로운 미생물을 없애서 땅을 건강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불로 단련된 땅은 봄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마음껏 수분을 흡수해 싹을 틔우기에 적당한 토양이 됐다. 궁극적으로 인간의 생명유지를 위해 이뤄진 풍습이지만, 그럼으로써 땅도 건강하게 회복됐다. 이것이 풍습이 된 것은 건강해지는 땅처럼 삶의 묵은 때를 불과 함께 태워버리고 복을 비는 사람들의 모습이 많아지면서부터가 아니겠는가, 1만5000여명이나 되는 대규모 인원들이 억새 태우기를 보러 온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과연 누구를 위한 행사였는지 다시 보게 된다. 자연을 회복은 물론 사람들의 기복성향을 이용해 관광상품으로 만든 것 자체를 잘못 됐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억새태우기를 통해 우리는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많다는 점이다. 자연을 관리하려는 것보다 수단으로 봐버린 인간의 오만함과 욕심이 더 큰 이유는 아니였을까 되돌아볼 일이다.
지난 10일 있었던 저탄소 녹색성장 긴급토론회에서 한 패널이 던진 질문이 인상 깊다. “친환경을 위한 성장이냐, 성장을 위한 친환경이냐”의 모호함을 지적한 질문이었다. 이렇게 성장과 보존의 사이는 끊임없이 부딪힌다. 어느 편이 옳다 그르다 하기에는 둘 다 중요하다. 이렇게 성정과 보존은 함께 이뤄져야 하는 것이지만 물과 기름처럼 극과 극을 달리 듯 부딪히고 있다. 녹색경영, 친환경이란 단어를 던지며 현재 터져나오는 정부는 물론 기업, 환경 단체의 프로그램들이 모호한 것도 결국 이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던져야 할 질문은 모호함보다 무엇을 목적으로 할 것이냐가 먼저다. 그 중심이 인간의 욕심이라면 성장을 하더라도, 또 무작정 보존만 말하더라도 협력해서 선을 이룰 방법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 복잡한 문제에 새롭게 접근하는 시선들이 있다. 사회적 기업인 노리단의 경우 친환경 경영을 목적으로 세운 것이 아님에도 현재 대부분의 경영전략이 친환경적이다. 버려지는 산업폐기물이 악기로 되살아나고, 어두컴컴하던 지역 내 화려한 놀이터가 생겨나며, 환경공해이던 소음이 음악이 된다. 단순히 모든 대상을 열린 시각으로 보고 싶던 마음이 시작이었던 것이다. 또 하나는 환경을 살리고 싶은 20대 젊은 시선이다. 환경을 통해 이익을 얻기보다, 환경을 통해 자신을 말하기보다, 단순히 환경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던 대학생이 작은 기업의 CEO가 되었다.
녹색경영, 친환경에 대한 정확한 답은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만, 중요한 것은 목적과 기준이 될 것이다. 과연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 이뤄가는 것인가 말이다. 한해 농사를 위해 땅을 준비하던 농부의 마음은 열매를 맺는 생명의 땅을 만들었지만, 자연을 활용하는데 미흡한 대책으로 마음만 앞서면 결국 참혹한 상처만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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