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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토종식물의 수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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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8.10.13  00: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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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속의 우리나라는 아시아 내륙의 동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작은 반도로 남북의 길이는 겨우 735킬로미터에 불과하다. 비록 좁은 땅덩어리지만 한반도는 난대, 온대, 한대의 식물대가 구분되어져 각 기후대별로 특징있는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4천여 종에 이르는 고등식물과 390여 종의 새, 260여 종의 나비, 1천 1백여 종의 딱정벌레, 2백여 종의 거미, 1백 40여 종의 담수어류, 90여 종의 포유동물 등이 엉켜 살며 하나의 오묘한 생태계를 꾸려가고 있는 것이다.
비록 세계적으로는 2퍼센트에 불과한 4천여종의 식물이 살고 있지만 그 특징있는 삶의 모양새를 전 세계의 식물학자들이 부러워하고 있으며 이 지구상 어느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1속 1종의 미선나무가 바로 우리나라에만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뿌듯한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듯싶다.
그러고도 더한 것은 그중 꽃이 피고 열매로 번식하는 현화식물(顯花植物)이 3천 7백여 종류나 살고 있어 좁은 국토 면적에 비하여 종류의 다양성이 매우 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다양한 기후와 특이한 지형의 영향으로 이 땅에만 살고 있는 토종식물이 약 480여종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학자에 따라 약간의 견해 차이를 보이고는 있다.
우리나라 식물을 오랫동안 연구하였던 일본인 학자 나까이는 아시아 지역의 식물구계(植物區界)를 논하는 중에 한반도 식물을 따로 분리시켜 한국식물구로 독립시킬 만큼 한반도 식물의 특이성과 고유성을 높게 평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성과 특이성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식물상에 대한 보존의 노력은 크게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특히 1950년대에는 해방 전 주로 일본인 학자들에 의하여 파악되고 수장되었던 식물상에 관한 확증 표본을 비롯한 각종 문헌들이 6.25전란으로 대부분 소실되었으며 그에 따라 우리나라 식물상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자료가 거의 사라진 상태이었기 때문에 보존의 노력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처지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더불어 196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개발계획은 모든 사회적 노력을 경제개발에만 초점을 맞추어 시행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보존에 관한 사항은 항상 개발의 논리에 밀려 버려 식물을 비롯한 자연 자원의 파괴는 가속화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이 땅에만 살고 있던 많은 토종식물 종들이 피해를 받게 되었으며 몇몇 종류는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절종 위기에 처하였거나 이미 이 땅에서 종적을 감추고 사라진 것들도 나타나게 된 것이다.
최근 급격한 생활양식의 변화로 그 어느 때 보다도 토종에 관한 세인의 높은 관심에 따라 이를 사업화하여 실리를 얻고자하는 부류의 사람들 덕에 토종이라 이름 지어진 식물들은 격정의 수난기를 또다시 맞지 않을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고 말았다.
그러나 서울노간주, 금강초롱꽃, 금마타리, 광릉골무꽃, 함양원추리, 거제딸기, 백양더부살이, 지리산오갈피, 통영병꽃나무, 한라돌창포, 제주쑥부쟁이, 도라지모시대 등 소중한 자연의 토종들은 꿋꿋하게, 은근과 끈기의 기개로 ‘한국’이라는 한 처마 밑에서 어렵사리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필자는 얼마 전부터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식물들 중에서 이미 사라져 버렸거나 혹은 그러한 위험에 처해 있는 희귀한 종류들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를 조사․연구한 바 있다. 그 결과 우리나라 전체식물 중 14.6%에 해당되는 577종류로 나타났으며 그중에서도 20여종은 시급히 보존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한반도에서, 아니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질 위험에 처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본 고에서는 그중에 속해 있는 섬개야광나무, 고추냉이와 함께 이름도 새로운 미선나무, 매자나무, 금강제비꽃 등 우리나라 토종식물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울릉도에서만 살고 있다는 섬시호, 섬현삼, 섬개야광나무, 섬버들, 고추냉이 가운데 섬시호는 이미 멸종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주로 바닷가 부근에 살고 있던 것으로 알려진 섬현삼은 울릉도에 일주 도로를 건설할 때 살고 있던 곳을 무참히 파괴한 탓에 현재 멸종 되었거나 멸종 위기에 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18년 처음 발견되어 학계에 보고되었던 섬개야광나무는 자생지인 울릉도 도동리에서 멸종된 것으로 알려져 1992년 산림청 임업연구원에서 연구하여 100여주를 인근 지역에 복원 하였으나 최근 국유림내와 추산리 발전소 뒷편에 몇 주만이 생존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섬개야광나무는 낙엽지는 키작은나무로 흰색의 꽃이 5~6월에 피며, 바위 틈에 자라 건조에 강하고 음지에도 잘 견디며 추위에 강하여, 서울지역에서도 꽃이 피고 열매 맺는 것이 가능했던 종류로,「이름하여 분재용」으로 무차별 남획되어 온 까닭에 지금은 보호가 시급한 종류로 분류되어 최근 개정된 야생동식물보호법에는 8종류의 멸종위기야생식물 Ⅰ급중 한 종으로 지정되어 최상급의 보호를 받게 된 종류이다. 그러나 섬개야광나무가 살았던 옛 고향땅은 이미 1962년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천연기념물 제51호로 지정되었던 전력이 있다 보니 법으로 보호하겠다고 정해지는 종류들의 수명이 오히려 걱정된다.
주로 습한 곳에 살고 있는 고추냉이도 최근 몇 년 사이 울릉도내에서 시행된 개발사업과 함께 자기만을 아는 무지한 사람들에 의해 무분별하게 훼손되어 천혜의 고향땅에서 자취를 감출 정도로 위기를 맞고 있다. 이 고추냉이는 여러해살이풀로 식물학상으로는 1935년 일본인학자 나까이에 의해 처음 발견되어 한국특산식물로 세계 학계에 소개된 것으로 뿌리 부분을 일명「와사비」라고 불러 향신료로 더 많이 알려진 종이다. 생선회를 먹을 때 없어서는 안되는 것으로 예전에는 신경통, 류마치스, 식욕 부진 등 약용식물로도 이용되었다. 20여년전 경북지방의 몇몇 식도락가들과 기관장들 사이에서는 생선회를 먹을 때 손가락 마디모양으로 생긴 고추냉이 뿌리를 작은 종지위에 얹고 즉석에서 갈아 먹는 호사스러움을 멋으로 알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처럼 외국에서 수입을 했다거나 아니면 재배를 한다는 사실이 없었던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울릉도 봉래폭포 근처에 있던 것들을 몰래 캐내어 내륙으로 밀반출한다던 설이 설득력이 있던 때로 지금처럼 토종의 중요함을 알았더라면 한번 만류라도 해보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고 보면 괜한 사람들 모두 죄인 취급할 것이 아니고 위기에 처한 고추냉이만큼은 당시 생선회를 즐겼던 그들을 원죄인으로 삼고 싶다. 최근에는 이와 유사한 일본 재배종들을 도입하여 고소득 작물로 재배하여 상당한 수입을 올리는 농가 들이 여럿 있어 토종이 수난 당할 확률은 그만큼 줄어 든 셈이다. 더욱 더 다행스러운 일은 고추냉이가 원래 살았던 냉천골에 지난 1994년 뜻있는 분들의 노력으로 3,000여 개체가 옛 고향땅에서 다시 살수 있게 되어 행복한 토종중에 한 종으로 남게 되었으며 야생동식물보호법이 개정되기 전 자연환경보전법에서는 보호야생식물로 지정되어 있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만 1속 1종이 살고 있다는 미선(尾扇)나무, 1917년 일본인학자 나까이와 정태현선생에 의해 발견되어 세상에 모습을 알린, 전 세계적으로 희귀한 종이다. 낙엽지는 키작은나무로 언뜻 개나리와 닮은 꽃은 봉우리가 겉에서 겨울을 지나 잎보다 먼저, 흰색이지만 분홍색, 상아색으로 3~4월에 은은한 향기를 지니며 핀다. 열매는 거의 둥글고 가장자리에 달린 날개가 마치 부채 모양같아 미선이란 이름으로 태어났다. 한때 그 희귀성 때문에 살던곳에서 완전히 훼손된 적도 있었으나 뜻있는 학자들의 수없는 노력으로 다시금 그 자리에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변산반도국립공원내에 부안댐 수몰 지역인 변산면 청림리 백천내 주변에 살던 미선나무들은 고향터를 잃고 지금은 내변산 가마소 계곡의 기도원 근처의 어두운 언덕에서 자신의 터를 알리는 문패도 달지 못한채 힘겹게 생존을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음이 얼마전 목격 되었다. 이를보면 아직도 우리들은 보존 보다는 개발을 우선시하는 명분만 앞세운 사회에 살고 있고 그 모습은 분명,『그나마 얄팍한 법의 보호 덕분에 수장(水葬)의 신세는 면할 수 있었음에 애써 태연한 척 부채들고 뒷짐진 옛 어설픈 양반 꼴』이다. 옛 고향인 충북 괴산과 진천 등의 여러곳과 변산반도의 삶터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종 자체는 야생동식물보호법이 정한 멸종위기야생식물 Ⅱ급 식물 56종중의 한 종으로 보호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매자나무과 식물은 10여종도 안되나 그중에는 지금까지도 구체적인 용도가 연구되지 못한 것들이 상당수이다. 중부 이북의 산지에서 주로 자라는 낙엽지는 키작은나무로 내한성이 강한 매자나무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잘 자라며 5월경 담황색의 포도송이 같이 늘어져 피는 초롱등 모양의 꽃과 가지마다 대여섯장씩 모여 달린 연두빛 잎새와의 조화는 분명 조물주의 작품임이 확실하고, 진주 모양의 진분홍색 과실을 얻는 9월의 열매는 더욱 감미롭고 아름답다. 그래서 일까? 열매를 즐겨먹는 새들의 자태는 더 황홀해 보인다. 제비꽃속 중 우리나라 토종은 금강제비꽃, 광능제비꽃, 갑산제비꽃, 참졸방제비꽃, 옥녀제비꽃, 서울제비꽃, 섬제비꽃 등이다. 이중 북녁의 북창, 갑산에 산다는 갑산제비꽃과 평안북도, 함경남도에 살고 있다는 참졸방제비꽃의 소식은 들어볼 방도가 없는 형편이고 보니 그저 무소식이 희소식인양 안타까울 뿐이다. 설악산과 강원도 이북 지방에 살고 있는 금강제비꽃은 낮은 들녁, 자주, 분홍, 노란색 옻을 입고 화사한 봄을 먼저 알리는 다른 제비꽃들과는 달리 깊은 산속 응달진 곳에서 조용히 늦은 봄을 알린다. 심장모양으로 생긴 잎 사이에서 짧고 가느다란 잎자루를 내어 밀고는 그 끝에 하얀 꽃 한 송이만을 피운다. 전생에 한맺고 이직한 애절한 처녀의 소리 없는 절규 마냥, 아니면 늦게 꽃 피운 자책감으로. 허나 소복한 단정함에는 정겨움만 더 할 뿐이다.

세계 속에 한 종밖에 없는 미선나무가 없어진다는 사실과 수백여종에 달하는 우리의 토종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또 그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느끼고 있는 안타까움은 정녕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주목(朱木)이라는 나무의 열매에서 탁솔이라는 암예방 치료제가 개발되어 이제 실용 단계에 있다. 그중 우리나라의 것이 탁월한 효능을 보인다고 하여 불치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이웃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태백산, 설악산, 오대산 정상에서 몇 천년을 하루같이 살아왔던 주목을 몇몇 사람들의 눈요기 감으로 훼손하는 일들이 왜 잘못된 것이며,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그들이 보존 되어야 하는지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움과 깨끗함이 서린 이 산천의 정기가 사랑스럽고 총명할 우리의 후손들에게 전해질 때 비로소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삶이 진정한 의미를 지닐 수 있게 되리라 믿으며, 훌륭한 인재는 영검있는 땅에서 난다는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라는 말의 뜻이 새롭게 느껴진다.

서 정 수
(자연환경보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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