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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우리의 야생동물(포유동물) 이야기Ⅳ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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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유동물은 새끼를 낳아 젖을 먹여 키우는 동물을 말한다. 약 2억 년 전인 중생대 후기에 파충류에서 진화되었으며, 생존하는 포유류 중 오리너구리와 가시두더지 2종은 아직까지 조상인 파충류와 같이 알을 낳는다. 포유류의 특징은 태양광선이나 혹독한 기온으로부터 몸을 보호해 주는 역할과 체온 유지에 필요한 에너지 소비를 최소한으로 억제할 수 있는 털을 가지고 있으며(털 대신 비늘, 가시, 강모 등을 가진 동물도 있음), 두개골과 아래턱이 직접 연결되어 있고 이가 있어 음식을 씹을 수 있으며, 항상 일정한 체온을 유지하는 온혈(溫血)과 4개의 심방으로 이루어진 심장을 가지고 있고, 뇌가 몸에 비하여 매우 크고 대뇌가 잘 발달되어 있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28목 146과, 1,192속, 4,800여종이 보고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고래를 포함하여 8목 27과 124종(육상 포유동물 6목 19과 83종, 해양포유동물 2목 41종)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 17종은 북한에만 서식하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었으나, 최근 조사에 의하면 과거 북한에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시라소니, 무산흰족제비, 갯첨서 등이 남한에도 서식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들 야생동물은 유사이래 인간에게 생태, 경제, 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특히 다양한 형태의 문화 창출에 자료를 제공하였는데, 옛날부터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전해져 오거나 기록된 이야기, 글, 노래, 춤 또는 그림 속에는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주인공 또는 주요 상징물로 등장한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야생동물은 사람을 돕거나 은혜를 갚았다는 동물, 나쁜 사람에게 벌을 주었다는 동물, 사람을 괴롭혔던 동물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며, 때로는 동물을 의인화하여 세상을 풍자하기도 하였다. 또한 동굴 벽화와 무덤에서 볼 수 있는 그림은 당시의 풍속 및 규범을 보여주고 있고, 야생동물을 사냥하고 희생당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야생동물의 숭배사상인 타부 또는 토템은 종교적인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이후 농경사회가 발달하면서 인간은 소, 돼지, 개, 토끼, 양 등의 야생동물을 길들이고 사육하면서 육류를 생산하고 농업에 이용하는 기술을 습득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부 야생동물들은 가축을 약탈하였고 인간들은 포식자들과 투쟁을 벌이면서 청동기 및 철기 무기를 만들면서 금속문화의 발달을 가져 왔고, 산업혁명 이후에는 모피산업 및 레크레이션 활동에 이용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생태계의 구성원으로 중요성이 강조되는 한편 애완동물로 발굴하여 인간과 동물이 친구가 되는 사회를 만들었다.
이 글은 우리나라의 야생동물 생태계를 대표하는 종에 대한 재미있는 토속적인 이야기와 상식적으로 알아두면 좋을 생태적 내용을 기술하였다.
호랑이
우리 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호랑이가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호돌이’가 당당하게 한국을 대표하는 동물로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호랑이는 잘 발달된 균형 잡힌 신체 구조, 느리게 움직이다가도 목표물을 향할 때의 빠른 몸놀림, 빼어난 지혜와 늠름한 기품이 있어 산군자(山君子), 산령(山靈), 산신령(山神靈), 산중영웅(山中英雄)으로 불리며, 진보, 독립, 모험, 투쟁 등의 속성을 가진 동물로 예부터 동물의 왕으로 군림하면서 사람들에게 위엄, 용맹의 표본으로 매우 신성한 자리를 지켜왔다. 실제로 구비문학에서 호랑이는 죽은 사람, 죽은 고기, 병든 사람, 임신한 사람, 상주, 문둥이를 잡아먹지 않고, 사람을 잡아먹어도 머리만큼은 남기고 바위 위에 올려놓고 간다는 속신이 전한다. 또한 사신(四神, 청룡·백호·주작·현무) 중 유일한 실존하는 동물로서 특히 속담·민담·민화를 비롯하여 문학작품에까지 호랑이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는 호랑이가 많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우리나라를 호담지국(虎談之國)이라고까지 불렀고, 중국 문헌 <후한서>동이전에도 호랑이를 신으로 받들어 제사지내는 나라라고 소개하고 있다.
정초에는 호랑이 그림을 대문에 내다붙이거나 부적에 그려 넣기도 하고, 조정에서는 쑥범(쑥으로 만든 범)을 만들어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무관의 관복에 용맹의 표상으로 호랑이 흉배를 달아주기도 했다. 글 하는 선비들도 필통이나 베개 등에 호랑이를 새겨 넣었다. 자식의 입신양명을 위해 산방(産房)에 호랑이 그림을 붙여놓기도 하고, 기가 약한 사람에게 호랑이 뼈를 갈아 먹이는 한방요법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장가갈 때 새 신랑이 호신장구로서 장도(粧刀)나 주머니에 호랑이 발톱을 달거나 허리에 차기도 하고. 호랑이의 가죽과 수염도 신령한 힘이 있다 하여 호신 물로 가지고 다니기도 하였으며, 여인네의 장신구나 장식품에도 호랑이를 새겨 넣기도 했다.
호랑이는 세계적으로 1종이고 서쪽의 터키 동부에서부터 동쪽의 오호츠크 해, 그리고 남쪽으로는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및 발리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분포한다. 지리적 격리에 따라 8개 아종(亞種)으로 분류하는데, 우리나라의 호랑이는 중국 북동부 및 연해주의 호랑이와 함께 시베리아 아종으로 가장 크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970년대에 들어와서 카스피 호랑이, 발리 호랑이, 자바 호랑이 등 3아종은 이미 멸종되었으며, 다른 아종들도 멸종위기에 처해 있어 국제적으로 절대적인 보호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호랑이는 백두산에서 전남 목포에 이르기까지 전국에 서식하였으며, 조선말까지 경복궁에 호랑이가 출몰할 정도로 비교적 적지 않은 개체가 있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맹수로부터의 인명 및 가축의 피해를 없앤다는 명목으로 대대적인 포획에 나선 뒤로 멸종의 길에 들어섰다. 남한에서는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포획된 개체가 마지막 호랑이이다. 다만 1940년대 초에 충북, 전북, 경남 등지에서 가축 및 사람이 피해를 입었다는 소문은 있었으나 정확한 기록은 없다. 그 후에도 호랑이가 출현했다는 소문은 여러 번 있었으나 확인된 적이 없어, 안타깝게도 남한에서는 이미 멸종된 것으로 보고 있다.
호랑이는 고산 산림지대에 서식하며, 멧돼지·사슴·노루·고라니 등 중·대형동물을 잡아먹는다. 사냥을 할 때는 후각보다는 시각과 청각에 의존하며 목표물의 옆이나 뒤에서 가능한 가까이 몰래 접근한다. 사냥감을 덮치는 동시에 쓰러트리고 목을 문다. 이후 사냥한 동물을 식생이 무성한 은신처나 물가로 끌고 가서 먹는다. 인도에서 호랑이가 12m를 끌고 간 들소를 남자 13명이 옮기려 했으나 실패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호랑이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짐작케 한다. 먹다 남은 사냥물은 풀이나 나뭇가지로 덮어 두고 며칠 동안 그곳을 찾아와 먹는다. ‘호환(虎患)’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이나 가축도 습격한다. 그러나 사람이나 가축을 공격하는 호랑이의 수는 매우 적고 하나의 습관적인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런 개체를 살인 호랑이라 부르며 더 이상의 피해를 없애기 위하여 포수들을 동원하여 포획해 버린다.
먹이를 찾고자 보통 하루에 80~100㎞를 달린다고 하니 체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단독생활을 하며 행동반경은 500~4,000㎢로 매우 넓어서 이미 자연환경이 상당히 파괴된 우리나라에는 호랑이가 살만한 서식지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보통 분비물을 나무나 바위에 묻히거나 눈에 잘 띄는 장소에 발톱자국을 남기어 영역을 표시한다. 한 걸음은 보통 80㎝이고 항상 뒷발은 앞발자국을 밟아 일직선이 된다.
국립환경과학원 생태복원과장 유병호 박사
< 자 료 : 한국자연환경보전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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