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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우리의 야생동물(포유동물) 이야기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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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구리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너구리는 외모가 둔해 보이고 능글맞고 의뭉스러워 미련한 동물로 인식해 왔다. 그래서 우리는 능청맞고 의심스러운 사람한테 ‘너구리’라는 별명을 곧잘 붙여준다. 세계적으로도 너구리에 대한 이야기는 비슷해서 동화나 TV 속의 너구리는 항상 어수룩하면서도 교활한 성격의 소유자로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 너구리라는 별명을 가진 대표적인 인물은 1980년 중반 프로야구 투수로서 30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장명부 선수일 것이다. 그에게 너구리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는 마운드에서 타자와 승부할 때 능글맞고 느긋하면서도 돌출적으로 행동하면서 수싸움에는 이겼기 때문으로 행동이 마치 너구리의 습성과 비슷한데서 붙여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너구리의 성격은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느긋하면서도 호기심이 많아 주변의 작은 움직임에도 세세한 관심을 보이는 한편, 의심이 별로 없고 경계심도 부족하여 덫에 잘 걸려들기도 한다. 동화나 TV 속에서 많이 보아 우리에게 익숙한 눈 주위가 검고 꼬리에 줄무늬가 있는 너구리는 미국너구리이다. 우리나라 너구리는 미국너구리와 좀 달라 행동이 민첩하고 작은 소리나 냄새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너구리는 야생동물의 먹이사슬에서 중간 정도를 차지하는 잡식성 동물이다. 그래서 동물생태계에서 별로 주목을 받지는 못하였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부터 너구리의 개체군이 크게 증가하면서 생태적 및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측면에서 관심을 자아내고 있다. 생태적으로는 너구리가 땅위에 번식하는 꿩, 오리류 등의 알을 깨 먹어 이들 종의 개체군을 크게 감소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1990년 대 중반에 흰뺨검둥오리의 생태를 파악하기 위하여 저수지 주변에서 번식장소를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둥지에서 발견된 알 모두가 너구리에 의하여 파괴된 사실을 확인하였으며, 최근 일부 수렵인들의 의견에 따르면 너구리에 의해 국지적으로 꿩의 밀도가 감소하여 수렵동물에서 제외시켜야 할 정도라는 등 야생동물 생태계에서 너구리 피해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너구리가 민통선 접경지대를 중심으로 소, 개 등 가축에 광견병을 옮기는 매개동물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너구리의 개체군이 증가하면서 먹이와 영역 투쟁이 발생하였고, 영역에서 밀려난 개체는 먹이를 먹지 못해 육체적으로 허약해지면서 광견병에 걸리게 되었으며, 먹이를 찾아 인가로 내려와 소나 개 등 가축의 먹이를 먹다가 가축과 싸움이 발생하면서 광견병이 가축에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도한 2007년 겨울에는 강원도 화천·양구지역 비무장지대를 중심으로 의문의 너구리 사채가 잇따라 발견되었다. 그 원인은 개선충, 모낭충, 곰팡이성 피부병 등으로 감염으로 밝혀졌는데 이 역시 영역에서 밀려난 개체들의 허약해지면서 발병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면 너구리의 밀도가 왜 크게 증가하였을까? 그 원인은 천적동물인 늑대, 표범, 멧돼지, 오소리 등이 사라져 생태계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이며, 특히 주요 천적이었던 오소리가 밀렵으로 감소되면서 상대적으로 피식자인 너구리가 증가한 것이다. 원래 자연 속의 야생동물들은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 속에서 생태계 스스로가 균형을 유지해 가는데, 인간의 무절제한 간섭이 균형을 깨트린다. 너구리는 자연생태계에서 먹이사슬의 단절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좋은 교훈이다.
잡식성 동물인 너구리는 자연환경의 적응력이 매우 뛰어나다. 그래서 평지부터 해발 2000m 아고산지대의 산림이나 하천 주변에 광범위하게 분포하며, 최근에는 점차 서식영역이 넓어져 인가 주변이나 대도시의 공원에 출현하기도 한다. 몇 년 전 종묘나 양재천에 나타난 너구리도 그러한 경우이며, 앞으로 인가 주변으로 영역을 확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외국에서는 너구리가 인가 주변의 음식물 찌꺼기를 먹으려고 쓰레기통을 뒤져 주변을 온통 쓰레기장으로 만드는 바람에 사람에게 귀찮은 동물로 전락하였다.
너구리의 외모는 여우와 비슷하다. 그래서 너구리를 여우로 오인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2003년 강원도 양구에서 여우 사체가 발견되면서 여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시절이다. 어느 일요일 모 방송국에서 경기도 광주에서 여우 사체를 발견하였다는 제보를 받았으니 확인을 해 달라고 전화를 했다. 현지를 찾아가 신고자와 방송국 기자를 만나 신고자에게 너구리가 아니냐고 물어보니 자기가 30년 동안 산을 다니며 동물을 봐 왔는데 너구리를 모르냐며 강하게 부인하였다. 그래서 이들과 같이 동물 사체가 있는 곳으로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너구리가 죽어 있었다. 서로 쑥스러워하며 간단한 인사를 하고 돌아오면서 죽은 시체를 보고도 혼동될 정도니 살아 있는 동물을 먼발치에서 보았을 때는 더 많은 오인이 있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너구리는 다리와 꼬리가 짧고 털은 긴 편인데 겨울에는 더욱 길어지며, 전체적으로 황갈색이고 어깨, 등, 꼬리의 털끝은 검은색이다. 발은 흑갈색이고 얼굴의 양옆과 눈 아래는 검다. 여우는 너구리보다 몸체와 꼬리가 길고, 귀는 삼각형이다. 털색은 등에서 옆구리까지는 황토색이고 얼굴 아래부터 배까지는 흰색이다.
너구리는 야행성 동물로서 여름에는 주로 개구리를 먹는데 봄에 벼 이양 후 개구리를 잡아 먹고자 논을 돌아다녀 어린 벼에 피해를 주기도 한다. 그 밖에도 설치류, 파충류, 어류, 곤충, 연체동물, 식물의 열매를 먹는다. 가을에는 장과류, 종자 또는 근경과 같은 식물질이 중요한 먹이다. 나무 타는 실력이 수준급이어서 나무 위에 올라가 열매를 따먹곤 한다.
너구리는 개과 동물 가운데 유일하게 겨울잠을 자는 동물로 충분한 먹이를 먹은 개체는 11월부터 3월까지 겨울잠을 잔다. 다만 겨울에 기온이 상승하면 먹이를 먹으러 깨어나기도 한다. 교미는 1월부터 3월 사이에 이루어지고 임신기간은 59~64일이며 보통 4~8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새끼 낳을 때의 행동은 특이하다. 어미가 자신의 입으로 뱃속의 새끼를 끄집어낸 뒤 새끼를 감싸고 있던 얇은 막을 벗겨낸다. 갓 태어난 새끼1개월이 지나면 어미는 새끼를 데리고 바깥바람을 쏘이며 길을 가르쳐주는데, 이것은 햇빛에 적응하면서 안전하게 먹이를 찾을 수 있도록 훈련시키기 위해서이다. 새끼는 암수가 함께 돌보는데, 태어나서 2개월 동안은 모유를 먹이고 여름이 끝날 무렵이면 새끼들을 독립시킨다. 새끼는 떨어지지 않으려 하지만 냉정하게 쫓아낸다. 그렇게 냉혹한 세계로 내몰린 새끼는 태어난 지 9~11개월만에 성적으로 성숙하므로 비교적 높은 번식력을 가진 동물이다.
원래 극동아시아·시베리아 동부·중국·일본·인도지나반도 북부 등에 분포하였으나, 러시아가 모피 생산을 위하여 유럽 지역의 러시아로 도입해 자연에 정착시킨 뒤 점차 서쪽으로 이동하여 지금은 유럽의 중부까지 분포가 확대되었다. 우리나라는 도서지방을 제외한 전국에 서식한다.
국립환경과학원 생태복원과장 유병호 박사
< 자 료 : 한국자연환경보전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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